Ramen Profitable
by Paul Graham
작성 일자 : 2024년 07월 07일
번역
이제 "라면값 벌기"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지면서, 저는 이 용어가 정확히 무슨 개념인지를 설명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라면값 벌기"는 스타트업에서 창업자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만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스타트업이 전통적으로 목표로 삼았던 수익성과는 다른 형태의 수익성입니다. 전통적인 수익성은 큰 베팅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것을 의미하지만, 라면값 벌기의 가장 큰 의미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스타트업이 보통 많은 돈을 펀딩받고 지출한 후에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는 5년 동안 5천만 달러를 지출하고도 수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수익이 발생하면 연간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도 있죠. 이런 종류의 수익성은 곧 스타트업의 성공을 의미합니다.
라면값 벌기는 위와는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직원이라고는 푼돈으로도 생활할 수 있는 한두 명의 25세 창업자가 전부인 스타트업이라면, 매출이 한 달에 3천 달러에 불과하지만 2개월 만에 흑자를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한 달에 3천 달러의 수익을 올린다고 해서 이 회사가 성공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돈을 펀딩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위에서 말했던 전통적인 수익성과 궤를 같이 합니다.
라면값 벌기라는 개념은 최근에 들어서야 실현 가능해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 스타트업에서는 아직 실현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소프트웨어 기반 스타트업에서는 비용이 낮아져서 이제는 실현 가능한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실제로 지출되는 비용은 창업자의 생활비뿐입니다.
이런 유형의 수익성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더 이상 투자자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적자를 내고 있다면, 결국에는 더 많은 펀딩을 받거나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라면값 벌기를 실현해낸다면 이러한 고통스러운 선택지는 피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펀딩을 더 받을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그럴 필요는 없죠.
급전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가장 큰 장점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급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투자자가 알게 된다면, 때때로 그들은 이를 당신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이용하려고도 할 것입니다. 심지어 일부 투자자는 당신이 돈이 부족해지면 점점 더 고분고분 해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시간을 끌기도 합니다.
또한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라면값 벌기에는 세 가지 이점도 존재합니다. 첫번째는 이것이 투자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이미 수익을 내고 있다면 이는 곧 적어도 누군가는 당신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당신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데에 진심이며, 비용을 낮게 유지할 만큼 재정 관리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주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가장 큰 세 가지 걱정을 해소해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투자자들은 똑똑한 창업자와 큰 시장을 가진 회사에 투자합니다. 물론 그 회사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죠. 이러한 회사가 실패하는 이유는 첫째, 판매하기 너무 어렵거나 시장이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 둘째, 창업자가 사용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에 집중하지 않고 엉뚱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 마지막으로는 회사가 돈을 벌기 전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하여 자금을 모두 소진하는 경우들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라면값 벌기에 성공해있다면, 이미 이러헌 실수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면값 벌기의 또 다른 장점은 사기에 좋다는 것입니다. 회사를 처음 창업할 때, '회사'라는 개념은 다소 형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법적으로는 회사지만 회사라고 부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사람들이 당신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회사라는 개념이 실감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당신이 지출하는 생활비가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는 포인트인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死)에서 생(生)으로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데 따르는 도덕적 무게가 기업의 경영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이런 규모의 사기 진작은 매우 중요합니다. 스타트업은 여전히 매우 드뭅니다. 왜 더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을까요? 재정적 위험 때문일까요? 어차피 25세 중 상당수는 아무런 저축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긴 근무 시간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직장세서도 장시간 일을 합니다.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은 책임에 대한 두려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합리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정말 견디기 힘든 두려움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생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라면값 벌기를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은 스타트업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스타트업의 결과가 많은 돈을 벌거나,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는 양극단의 분포를 가진다는 것을 고려할때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설명할 것은 라면값 벌기의 네 번째 장점으로, 가장 덜 분명하지만 한 편으로는 가장 중요할 수 있습니다. 돈을 펀딩받을 필요가 없다면, 당신은 오롯이 회사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을 펀딩 받는다는 것은 꽤나 골치 아픈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의 생산성이 이전의 3분의 1 수준만 된다해도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이는 몇 달 동안이나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투자 유치가 왜 그렇게 골치가 아픈지 정확히 이해하지(아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투자한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 과정에서 성장이 멈추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YC가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전까지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죠. YC의 투자 유치 초반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요청드렸던 사람들은 모두 승낙하였죠. 하지만 세부 사항을 작업하는 데 몇 달이 걸렸고, 그 기간 동안 저는 실질적인 업무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항상 투자 유치에 관해서만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에는 언제나 가장 시급한 문제가 하나씩 있는 법입니다. 밤에 잠들 때나 아침에 샤워를 할 때에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죠. 그리고 투자 유치를 시작하면 이 문제가 곧바로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됩니다. 아침에 샤워를 한 번만 하는데, 샤워하는 동안 투자자를 생각한다면 제품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죠.
반면에 투자 유치 시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여유로운 시기를 통해 투자 유치를 진행할 수도 있고, 투자 라운드가 빨리 마감되도록 촉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라운드 마감 여부에 신경 쓰지 않고, 생각을 사로잡히는 것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라면값 벌기라는 것은 그 용어 그대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지 않고 스타트업을 '부트스트랩(Bootstrapping)'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경험상으로도 이는 잘 먹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투자를 받지 않고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매우 드뭅니다. 아마도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비용이 더 저렴해진다면 이런 방식이 보편화될 수 있겠죠. 반면에 돈은 투자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자금을 덜 필요로 할 수록 더 좋은 조건을 제시 받을 수 있게 될것이고, 이는 더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는 서로 균형을 이루는 경향이 있죠.
라면값 벌기는, 당신의 제품이 베타테스팅 단계에 들어갔을 때에 당신의 비즈니스 모델도 같이 베타테스팅에 진입하게 해야한다는 Joe Kraus의 생각과도 다릅니다. 그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건 너무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Facebook은 그렇지 않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스타트업보다 더 잘 해냈습니다. 당장 돈을 버는 것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의 원칙이 많은 스타트업에게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업자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 같을 때, 저는 때때로 이런 제약이 그들을 행동으로 이끌기를 바라며 고객에게 무언가를 지불하게 하라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조의 아이디어와 라면값을 벌기의 차이는, 라면값을 버는 회사는 궁극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으로 지금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돈을 벌기만 하면 됩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처음에는 야후와 같은 사이트에 검색 라이선스를 제공하여 돈을 벌었던 Google입니다.
라면값 벌기에는 단점이 있을까요? 아마도 가장 큰 위험은 당신의 회사가 컨설팅 회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스타트업은 모두가 사용하는 하나의 것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제품 회사(product companies)이어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특징은 빠르게 성장한다는 점인데, 컨설팅 회사은 제품 회사처럼 확장될 수 없습니다. 컨설팅을 해서 한 달에 3000달러를 버는 것은 상당히 쉬운 일이며, 외주 프로그래밍 업계에서도 이는 상당히 낮은 금액에 속합니다. 때문에 컨설팅에 빠져들어서, 실제로는 스타트업도 아니면서 우리는 라면값을 버는 스타트업이라고 착각하는 늪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컨설팅 유형의 일을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스타트업은 보통 처음에는 이상한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라면값 벌기는 목적지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스타트업의 최종 목표는 크게 성장하는 것이지, 라면값 벌기는 도중에 죽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입니다.
원문: Ramen Profitable